KPOP 전설의 시작 난 알아요
본문 바로가기
추억

KPOP 전설의 시작 난 알아요

by 모모별아빠 2023. 2. 21.
728x90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프로필

맴버 서태지(1972년생) 양현석(1969년생) 이준호(1967년생)

서태지와 아이들 1집 1992년 0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 2집 1993년 06월 21일

서태지와 아이들 3집  1994년 08월 10일

서태지와 아이들 4집 1995년 10월 05일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1996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가요계는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 가요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우선 가요프로만 봐도 트로트 발라드 위주인 나이가 있는 팬들 중심이었다면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에는 가요프그램은 팬들이 10대 위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 중 하나로 199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 음악계를 크게 바꾸며 활동한 전설적인 그룹 중 하나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에 데뷔 앨범 "난 알아요"를 발표하며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4집까지 앨범을 발표하며 대중과 음악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당시의 대중음악과는 차별화된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전자음악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크게 활용하며, 힙합, , 팝 등의 장르를 자유롭게 섞어 혁신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 뿐만 아니라 무대 연출과 옷차림 등도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대규모 공연을 선보이며 스테이지 위에서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춤과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의상은 세련되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대중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착용한 옷을 모방하며 패션 트렌드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단순한 음악 그룹 이상의 의미를 지닌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들의 음악과 퍼포먼스, 패션은 대한민국의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며, 199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 문화적 변화를 대표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습니다.이 그룹은 은퇴 후 이준호는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영턱스클럽을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양현석은 YG엔터테이먼트를 만들면서 우리나라 3대 기획사까지 성공하였으며 빅뱅, 블랙핑크등 한류를 이끄는 아이돌을 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음악적으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의 변화와 함께 성장하며 대한민국 음악계와 대중문화사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나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초등학교 6학년때 서태지와 아이들 처음보고 충격이었다. 1992년 4월 11일 MBC "특종TV연예" 신인들이 나와서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난알아요" 부대를 선보였다. 그러나 음악 전문가들은 평가는 역대 최악의 점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는 반대로 다음날 학교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무대 이야기뿐이었다. 그렇게 신선하게 충격적인 무대를 본 10대들은 춤과 노래를 따라하게 된다.지금까지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볼수 없는 무대였다. 그렇게 티비프로그램은 서태지와 아이들로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 수학여행때 장기자랑도 모든 반들이 "난 알아요"로 장악하게 된다. 그렇게 잘 나가다가 갑자기 2집 만들기 위해 휴식기를 가진다고 활동중단을 했을때 그만큼 공허한것도 있었다. 그렇게 몇개월 후 중학생으로 올라간 나는 2집이 나오는 날 앨범을 사기 위해 레코드집을 몇군데 돌아다녔다. 그렇게 처음으로 무엇을 사고 가지고 싶어서 노력한 처음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하여가를 처음 들었을때는 충격이었다. 너무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 처럼 몇번 더 듣다보니 음악이 너무너무 좋았었다. 이런 경험은 하여가 이 후로 못느껴본거 같긴하다. 아마도 그 이후로 내 듣는 내 귀가 바뀐거 같다. 그렇게 내 귀에 이어폰은 서태지 노래만 들려주었다. 94년 3집때는 사회 비판적인 가사들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특히 교실이데아는 모든 학생들의 구세주같은 가사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아직 교육이 3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시 다음 앨범을 위해 1년 정도 공백끝에 95년도 정부도 사회도 못한 가출한 청소년들을 집으로 가게 만드는 컴백홈(come back home)이란 노래로 4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느덧 초등학생때부터 시작되었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한다고 방송특집으로 공연을 했든데 몰입해서 본 그때가 떠오른다. 그렇게 4집을 4개월 정도 활동을 끝으로 나의 우상은 그렇게 은퇴를 하게 됩니다. 아마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은

모두 슬픔에 잠기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나의 학창 시절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과 무대 슬램덩크 농구 이 두개가 전부였다. 그런 존재가 앞으로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누구를 잃어버린거 같은 우울감이 있었다. 얼마전에

서태지 25주년 콘서트 BTS랑 꾸민 무대를 보는데 더슬램덩크퍼스트 같은 기분처럼 보는내내 울컥했다. 이유는 하나뿐이겠지 그 시절 나의 학창 시절을 책임져준 그 존재 언제든지 듣고 싶을때 들을 수 있는 그 분의 음악이 있었음에 감사하다. 

40대가 되어버린 지금 아직도 그 분의 음악을 들으면 추억 그리움등으로 내가 살아왔던 날들을 회상하게 된다.  

댓글